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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근대 일본은 한국을 어떻게 병탄했나’ 교양서 시리즈 발간


(한국방송뉴스/김한규기자)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2014년도부터 기획·발간하고 있는 일본의 역사왜곡문제를 다룬 교양서 시리즈의 제3집으로 ‘근대일본은 한국을 어떻게 병탄했나?’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을 각각 발간했다고 30일 밝혔다.

그동안 2014년도에 제1집 ‘일본근대의 보도판화는 한국사를 어떻게 왜곡했나?’, 2015년도에 제2집 ‘일본군 ‘위안부’ 알고 있나요?’에 이어 올해는 일제의 한국강제병합의 불법성을 논증한 ‘근대일본은 한국을 어떻게 병탄했나?’를 발간한 것이다.

이 시리즈의 기획 의도는 일본의 역사왜곡문제에 대해 국내에서는 많은 비판을 하고 있지만 정작 관련 문제를 주제별로 엮어 국내와 일본에 직접 배포하기 위한 취지로 기획되었다.

이 책의 집필은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학과의 한철호 교수가 맡았고 번역은 일본 고도모교이쿠호센대학교의 사노 미치오(佐藤通夫) 교수가, 감수 및 도판자료 정리는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맡았다.

1910년 일제의 한국강제병합은 한국인에게는 전무후무한 치욕스런 사건이며 일본의 한국침략의 결정판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일본 우익은 침략이 아니라고 강변하였다.

오히려 미개한 한국을 문명화로 이끌었으며 1910년 당시 양식 있는 한국인은 일본의 지배를 환영했다고 하는 등 터무니없는 주장을 폈다. 더욱이 최근 들어 일본의 우경화가 가속화되면서 일제의 한국 식민 지배를 미화하는 논리도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한철호 교수는 이 책에서 그동안 한국역사학계가 일본 우익의 왜곡된 주장에 대해 일일이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일부러 무시해온 경향이 있었지만 일본사회의 잘못된 인식을 적극적으로 바로잡는 것도 한국근대사 연구자의 과제라고 문제의식을 밝혔다.

이 책의 목차 구성은 반어법을 구사한 표제를 달아 일본 우익의 주장에 반박하는 문투를 사용했다. 즉 1장 ‘러일전쟁이 한국을 지켜주기 위한 전쟁이라고?’ 제2장 ‘을사조약 체결을 고종이 허락했다고?’ 제3장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을 병탄할 생각이 없었다고?’ 제4장 ‘한국병탄조약이 평화적으로 체결되었다고?’ 제5장 ‘한국인이 일제의 한국지배를 원했다고?’로 명시하였다.

그리고 에필로그에는 일본 유취관의 전시에서 한국 강제병합을 어떻게 미화하고 있는지를 밝혀 일본의 역사 왜곡 논리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 책의 주요 논점은 첫째 1910년 일제의 강제 병합에 대해 ‘한국병합’, ‘한일병합’, 혹은 ‘한일합방’으로 부르는데 반드시 ‘한국병탄’으로 명명해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당시 일제는 한국과 일본을 대등한 관계를 의미하는 ‘합방’이나 ‘합병’이라는 용어는 적절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침략행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병탄’이라는 용어도 피하고자 했다.

거기에서 침략행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일본의 우위성을 드러낼 수 있는 용어로 ‘병합’을 고안해 낸 것이다. 필자는 그동안 우리는 이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채 ‘병합’과 ‘합방’ 등을 혼용해온 경향이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반드시 ‘한국병탄’으로 불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에서의 외교방식을 어떻게 교묘히 악용해 나갔는지의 과정을 밝혔다. 즉 국제법을 준수한다는 미명하에 대한제국의 관리를 회유 혹은 협박하여 효력이 낮은 등급의 약정을 체결한 후에 이를 국제사회에 공표할 때에는 그 약정의 용어를 조약으로 둔갑시켜 한국지배를 강화해 나간 점을 지적했다.

을사늑약의 경우 이 조약을 Treaty로 체결하고자 했으나 고종 및 대한제국 관료의 저항으로 제목도 붙이지 못하게 되자 처음에 영문명으로 협약(Agreement)으로 교묘히 바꾸었다가 미국 영국 등에 공식적으로 통지할 때는 다시 협정(Convention)으로 둔갑시켜 조약의 의미를 격상시키는 수법을 사용했음을 밝혔다.

셋째,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 병탄을 위한 기반조성을 완료한 인물이자 노회한 침략주의자였지 결코 평화주의자가 아니었음을 논증하였다.

넷째, 일제의 한국 병탄 과정에서 한국인이 얼마나 강경하게 항거하였는지를 다양한 자료를 통해 밝힘으로써 ‘한국인이 일제강점을 원했다’는 일본 우익의 논리를 근본적으로 반박했다.

마지막으로 을사늑약 당시 일어난 현상에 대해 상호 상반된 삽화를 실어서 한·일의 시각이 어떠하였음을 보여주었다. 즉, 일본은 한·일의 대표가 상호 협의에 의해 평화적으로 조약을 체결한 것처럼 묘사한데 반해 한국의 신한민보(1913.8.29)에는 일제의 강압에 의해 조약이 체결되었음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특히 갓을 쓴 한국의 관료가 일본군에 떠밀려 대한제국의 황관을 일왕에게 바치는 모습을 풍자한 그림은 그동안 학계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삽화이다.

이 책의 배포에 대해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먼저 한국어판은 국내 대학 도서관 및 공공도서관에 배포되며 일본어판은 일본 전국의 대학도서관과 일본 초중고 역사교사 모임, 한국학 연구기관 등에 배포된다고 알렸다.


종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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