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박기문기자] 2018년 고객응대근로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법안 시행 후 6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고객, 민원인의 강성‧악성 행위는 여전한 모습을 보인다. 현재 전체 취업자 2680만명 중 감정노동자는 1172만(’20~’21년 기준)으로 추정되고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정노동자의 노동권익 보호와 안전한 노동환경 조성은 물론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논의의 장이 마련됐다.
<120다산콜, 20일(수) 서울시청에서 「2024 감정노동자 보호 컨퍼런스」 개최>
서울시 120다산콜재단(이사장 이이재)은 20일(수) 오후 2시 서울시청 다목적홀(8층)에서 「2024 감정노동자 보호 컨퍼런스」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감정노동종사자와 전문가, 관계기관, 시민 등 약 500명이 참석했다.
120다산콜재단은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 시절인 2007년 9월 ‘서울시 민원을 전화 한 통화로 해결’한다는 목표로 출범했다.
이날 컨퍼런스에서는 상담사 보호조치, 법적보호 체계 구축, 사회적 인식변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악·강성 민원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또한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실제 악·강성 민원 피해 현황을 살펴보고 법률·의료·사회 등 각 분야별 대응방안과 사회적 책임 등을 차례로 논의했다.
우선 세션 1에서는 서강숙 120다산콜재단 민원관리부장이 연사로 나서 공공과 민간 콜센터의 민원 사례와 피해 실태 공유하며 감정 소모와 피해에서 발생하는 문제점 등을 발표했다.
지난 5년간 120다산콜에 접수된 악·강성 민원은 코로나 팬데믹이 절정에 올랐던 ’21년~’22년 급격하게 증가했고 5년간 법적조치도 35건에 달했다.
실제로 약 15년간 주택 내 모기물림 등 부당한 민원을 비롯해 문자 성희롱, 욕설 등 약 1,147건의 민원을 접수한 시민도 있었고, 약 1시간 40분 가량 전화를 끊지 않고 민원(불법주정차)을 제기한 사례도 있었다.
이어 조덕현 국민권익위 고충민원심의관이 공공기관에 접수된 특이민원 실태와 대응방안을 밝혔다. 조 심의관은 중앙행정기관 및 지자체 등 309개 공공기관에 대한 실태조사를 결과 가장 빈발한 특이민원은 상습·반복 제기를 통한 담당자 괴롭힘(48%)이었고 다음이 폭언‧폭행(40%), 신상공격을 위한 일명 좌표찍기(6%) 순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특이민원 개념 정립과 발생원인, 차단근거 및 종결처리 확대, 피해공무원 보호 등 대책을 소개했다.
특이민원은 정당한 행정서비스를 요구하는 일반적인 민원과 차별되는 것으로, 민원담당자의 신체적‧정신적피해는 물론 나아가 민원서비스 질적저하를 초래해 기관 차원의 특별한 관리·대응이 필요한 민원이다.
지난 5월 정부는 특이민원에 개념정립과 유연화부터 발생시 차단 근거 마련, 종결처리 확대와 피해공무원 보호조치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어 1차 후속조치로 지난 10월 29일 민원처리 담당자 보호를 위한 시행령(4조)를 개정하고 2단계 후속조치로 민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24.10.22.)했다.
세션 2는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대책에 초점을 맞췄다. 법률 분야에서 김민정 변호사(법무법인 우성)가 ‘감정노동에 대한 현행 법률과 조례의 한계 및 개선 방향’을 발표하고, 의료분야는 권순찬 교수(순천향대 천안병원)가 ‘감정노동자의 정신건강 증진방안’을 내놓는다. 사회 분야에서 이정훈 대표(노동일터연구소 강동)가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사회적 책임’을 제시한다.
(법률) 김민정 변호사는 악·강성 민원 법적 처벌 기준을 소개하고 개선방안도 제시한다. 예컨대, 현재 성적수치심‧혐오감 유발 발언의 경우 전화·문자는 통신매체로 구분돼 처벌이 가능하나 대면 상담시엔 처벌 조항이 없어 규정 신설이 필요하다고 밝힌다. 또 반복 폭언은 동일 상담사에 민원이 연결되지 않으면 반복성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또한 고성도 상담사가 위압감을 느낄 수 있지만 욕설이 아니라 폭행죄 성립이 어려운 점 등도 개선해야 할 사항으로 제안한다.
(의료) 권순찬 교수는 불건전한 생활 습관, 번 아웃, 신체·정신적 건강 문제 등 노동자 개인의 문제는 물론 생산성 저하, 산업재해 발생 등 감정노동이 건강과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한다. 아울러 근로자 보호를 위한 직장문화 조성, 고객응대 매뉴얼 마련 등 회사차원의 보호‧예방방안은 물론 분노 조절 훈련, 인지행동 수정, 마음 다스리기와 같은 개인 차원의 관리 방법도 안내한다.
(사회) 마지막으로 이정훈 대표는 감정노동자 인식개선을 위한 시민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을 공유한다. 이 대표는 감정노동자 보호에 적극적인 사업장을 지지하고 취약사업장은 드러내는 ‘적극적 감시자’와 노동자 상호 배려와 존중에 앞장서는 ‘모범적 소비자’, 부당한 행위는 시정을 권유하는 ‘엄격한 고발자’, 법 개정‧조례 제정 등에 적극 참여하는 ‘활동적 참여자’ 등 사회를 움직이는 역할에 먼저 한 걸음 더 나아가자고 제시한다.
두 개의 세션이 끝난 후엔 감정노동자와 각 분야 전문가가 실제 경험과 사례에 기반한 토론을 통해 실질적 보호 방안을 모색하였다.
<컨퍼런스와 연계, 10개 지자체가 참석한 ‘광역자치단체 콜센터협의체’ 출범식 개최>
한편 이날 컨퍼런스에 앞서 서울특별시 120다산콜재단을 중심으로 부산·인천·대구·대전·울산·경기도·충남·경남·강원 등 10개 지자체가 참석한 ‘광역자치단체 콜센터협의체’ 출범식이 진행됐다.
협의체는 제57차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총회에서 광역자치단체 콜센터 협의체 구성의 필요성이 제기돼 120다산콜재단 주관으로 출범을 준비했다.
협의체는 지역 간 경계를 넘어 유연한 협력체계를 바탕으로 악·강성 민원 대책 마련과 콜센터 상담직원을 위한 제도개선 등 감정노동자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목적이다.
향후 협의체는 ▴(상담역량 강화 공동노력)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신기술 발달에 따른 상호교류 ▴(상담 통계 기준 표준화 마련) 콜센터 운영지표 관련 통계 산출방식 및 용어 정의 협의 ▴(유기적 협력 체계 구축) 재난, 사건·사고, 감염병 등 예측 불가능한 긴급 상담 사례 발생 시 대응 체계 마련 등을 위한 방안을 논의해 나갈 예정이다.
출범식 이후 광역자치단체 콜센터 운영과 감정노동자 보호 위한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120다산콜재단은 전산 시스템, 인공지능 기반 콜센터 구축, 상담지식정보(상담DB)운영, 상담사 역량 강화 교육과 상담 응대 품질 점검 방안, 악·강성 민원 대응 체계 등 노하우를 소개했다.
이이재 120다산콜재단 이사장은 “감정노동자 보호 컨퍼런스는 10명 중 4명에 이르는 대한민국 감정노동자의 노동권익보호는 물론 감정노동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한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이라며 “120다산콜센터는 상담사를 위한 민원대응 방법과 노동자 보호 가이드라인이 담긴 매뉴얼부터 노동자 보호 종합대책까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적극 조성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