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허정태기자] 북한이 사실상 대남 적대시 정책 회귀를 선언하면서 남북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다.
북한은 9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김여정 노동당 제 1부부장과 전직 통일전선부장인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전날 주재한 대남 사업부서들간 총화회의에서 남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남북간 모든 연락과 통신을 차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탈북민 대북전단 살포 행위와 관련 지난 4일 낸 담화에서 △남북연락사무소 폐쇄 △금강산 관광 폐지 △개성공단 철거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을 경고한 바 있다.
북한의 이번 결정은 '화해와 협력'을 강조해온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분위기를 180도로 전환시켜 남북, 북미 관계 전반에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일단 일차적으로 남북간 연락 차단 조치를 취해 초기 압박 수준을 최고조로 높인 것으로 해석된다.
김여정 제1부부장과 김영철 부위원장도 회의에서 "(통신연락선 차단·폐기는) 남조선 것들과의 일체 접촉공간을 완전격폐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한 첫 단계 행동"이라며 추가 단계적 조치가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한 "배신자들이 저지른 죗값을 정확히 계산하겠다"고 밝혀 향후 북측 조치에 대한 긴장도를 높였다.
이러한 북한의 반발은 표면적으로는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문제삼고 있다. 그러나 이는 북미 교착 장기화 상황에서 남측에 누적된 불만과 거의 한계에 도달한 내부 피로감이 더 큰 요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은 정주년임에도 대내에 내세울 성과가 없는 현 정세에 대한 책임을 남측에 전가함으로써 내부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도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하며 미국을 압박하는 효과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대외 행보가 막힌 가운데 그간 내부적으로 군사 부문에 행보를 집중해왔다. 노동당 창건일 10월 10일을 앞두고 무력 시위를 통해 대내에 군사 부분 성과를 과시하고 자신의 치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이 20여일만에 첫 공개 행보로 택한 지난달 당 군사위 확대회의에서 "핵전쟁 억제력 강화"를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를 볼때 북한은 당분간 더 대남 적대시 태도를 유지하며 단계적으로 경고한 조치들을 취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곧바로 9·19 군사합의 공식 파기나 개성공단 폐쇄라 극단적 조치보다는 상대의 태도를 보며 단계적으로 서서히 요구 수준을 높여나가는 특유의 전술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우리 육·해·공군이 합동 해상사격 훈련에 돌입하는 오는 11일부터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20주년이 되는 오는 15일까지가 1차 '고비'로 평가된다.
그러다 남북 7.4 공동성명 44주년인 7월 4일을 거쳐 한미연합훈련이 예정된 8월을 앞두고 도발 수위를 한 차원 올려 한미를 동시 압박할 것이란 관측이다.
군 당국이 오는 11일부터 경북 울진 죽변 해안에서 실시하는 훈련은 동해상에서 북한의 도발 상황을 가정하고 도발 원점을 타격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북한은 이 훈련에 앞서 군산 해상에서 이뤄진 우리 군의 서북도 합동방어훈련에 대해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며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접경지역에서 남측이 골머리가 아파할 일판을 벌여도 할 말이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지난 5일 통일전선부 대변인 명의 담화를 들어 조만간 판문점 등 접경 지역에서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직접 겨냥한 우발 충돌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5월 GP총격 당시 우리 군이 즉각 대응에 취한 것을 볼때 우발적 충돌은 북한 측이 더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우리 측이 대응하기 어려운 형태로서 여러 군사 옵션을 고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군사분계선이 명확한 육상 공중이 아니라 6월이 꽃게철이라는 점에서 서해 해상에서 북한의 어떠한 조치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