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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졸업장 받은 어르신들 “이제 고등학교 진학해야죠”

2013년 개교 방송통신중학교 제1회 졸업식

〔한국방송뉴스/한상희기자〕 “언니~ 졸업 축하해.” “오빠, 내년에 고등학교 꼭 같이 진학해야지.” “어머니께서 집이 가난해 자식을 중학교에 보내지 못해 한을 품고 돌아가셨는데…. 이제 중학교를 졸업했으니 어머니와 저의 한을 함께 풀었어요. 산소에 졸업장을 바치고 싶습니다.”

“드디어 중학교를 졸업해 정말 기뻐요! 내년엔 고졸 검정고시를 거쳐 꼭 대학에 들어가 무역학을 공부하고 싶어요.”

2월 13일 서울 아현중학교. 토요일이라 조용해야 할 학교 강당이 들뜬 목소리로 가득했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그곳에는 앳된 학생들이 아닌 곱게 옷을 차려입은 할머니·할아버지가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3년 동안 함께 공부하며 정이 많이 든 학우들과 언니, 오빠 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은 여느 중학교 졸업생들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졸업장을 받을 땐 경건한 침묵이 흘렀다. 수십 년 만에 손에 쥐게 된 졸업장에 누군가의 얼굴엔 환한 웃음꽃이 피었고, 또 다른 이들은 배우지 못해 겪은 오랜 서러움과 감격이 뒤엉켜 진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광주북성중학교에서 열린 방송통신중 졸업식에서 졸업생이 졸업장을 수여받고 있다(오른쪽 김재춘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광주북성중학교에서 열린 방송통신중 졸업식에서 졸업생이 졸업장을 수여받고 있다(오른쪽은 김재춘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배움의 기회를 잃은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방송통신중학교(이하 방송중)가 제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졸업식은 총 3개교에서 진행됐으며 아현중 부설 방송중은 2월 13일에, 대구고 부설 방송중과 광주북성중 부설 방송중은 2월 14일에 각각 열렸다. 졸업생은 총 201명으로 아현중 부설 방송중 23명, 대구고 부설 방송중 98명, 광주북성중 부설 방송중 72명, 수원제일중 부설 방송중 5명, 호원중 부설 방송중 2명, 경원중 부설 방송중 1명이 졸업장을 받았다. 특히 이 가운데 50~70대가 145명으로 늦깎이 학생들이 배움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대구고 부설 방송중의 전모 씨는 부인, 여동생과 동반 졸업을 하게 됐다. 전 씨는 “방송중 3년 동안 많은 학우를 사귈 수 있어서 즐거웠고, 학교생활을 통해 영어 간판을 읽을 수 있게 돼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서울 아현중학교 부설 방송통신중학교 2학년 재학생들이 졸업생들을 위해 특별공연을 하고 있다.
서울 아현중학교 부설 방송통신중학교 2학년 재학생들이 졸업생들을 위해 특별공연을 하고 있다.

또 아현중 부설 방송중의 베트남 이주 여성 원모 씨도 베트남에서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학업을 가족들의 격려로 다시 시작해 중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

아현중 부설 방송중 청소년반 박모 학생은 정신지체 3급으로 네 시간의 통학 거리 등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학업에 대한 의지로 성실하게 학업에 임해 졸업의 영예를 안았다. 대부분의 방송중 졸업생은 방송통신고에 진학해 학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지난 2월 14일 대구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중학교 졸업식에서는 총 98명의 학생이 졸업장을 받았다.
지난 2월 14일 대구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중학교 졸업식에서는 총 98명의 학생이 졸업장을 받았다.

12개 학교 2074명 재학
올해 전국 총 20개교로 확대 운영

방송중은 중학교 학력을 취득하지 못한 성인과 학교 밖 청소년 등에게 학력 취득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공립중학교로 현재 12개 학교에 2074명이 재학하고 있다.

방송중은 2013년 대구고, 광주 북성중을 시작으로 2014년 대전 봉명중, 수원제일중, 의정부 호원중, 창원 경원중, 2015년 서울 아현중, 남춘천중, 원주중, 강릉중, 전주 전라중, 진주중 등 총 12개교로 운영되고 있다. 수업은 방송·정보통신 매체를 통한 온라인 수업과 출석 수업을 병행하며 한 달에 두 번 격주 주말에 출석 수업이 있어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다. 일반 중학교와 동일하게 3학년 2학기제로 중학교 일반교과 중심 수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 학습경험인정제를 통해 학교 밖에서의 다양한 학습 경험을 인정받으면 최대 1년까지 조기입학 및 졸업도 가능하다.

한편 국민의무교육인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15세 이상 인구는 전국적으로 385만 명(2010년 기준)에 이른다. 교육부는 중학교 학력 취득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시·도교육청과 협력해 올해 3월 8개교(부산 화명중, 인천 구월여중, 울산 학성고, 경기 성남 삼평중?광명중, 전남 목포중앙여중, 순천연향중, 제주제일중 등)를 추가로 개교하고 지속적으로 방송중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은 다양한 연령의 학생 특성을 고려해 맞춤형 교육과정 및 콘텐츠 개발, 인성·진로교육, 체험활동 등 맞춤형 프로그램을 병행하며 지원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방송중은 초등학교 졸업자나 중학교 입학 자격 검정고시 합격자, 중학교 중도 탈락자, 외국 또는 이북 지역에서 초등학교 해당 학력 이상의 교육을 이수한 자 등이 지원할 수 있으며 거주 지역 인근에 있는 방송중의 모집 요강에 따라 접수하면 된다. 방송중 입학 관련 상담 등은 한국교육개발원 방송중·고 운영센터(1544-1294) 또는 해당 학교로 문의하면 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고령자들이 방송중을 통해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 다양한 연령의 학생 특성을 고려해 맞춤형 교육과정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내 나이가 어때서.. 여든 살 최고령 졸업생

“기쁘기도 하지만 애잔한 마음도 크네. 배울 수 없어 안타까웠던 내 인생의 시간들이 생각나더라고. 그래도 행복해.”

이오석(80·가명)할아버지는 광주 북성중학교 부설 방송통신중학교(이하 방송중) 첫 졸업식의 최고령자로 졸업장을 받았다. 그는 배움에 목말랐지만 제대로 된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 지난 세월이 생각나는 듯 잠시 말을 멈추기도 했다.

6·25전쟁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그는 이후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배움의 기회를 잃은 할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품앗이 농사를 도우면서도 늘 책을 품고 다니며 배움의 열정을 놓지 않았다. 형편이 어려워 몰래 서당에서 배운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하루 종일 달달 외우기도 했다.

배울 기회를 놓쳤지만 늘 최선을 다했던 그는 번듯한 회사에 취직도 하고 30년간 회사생활을 하며 인생의 대소사를 모두 잘 헤쳐왔다. 퇴직 이후 인생의 황혼기인 노년을 맞았지만 배움에 대한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는 결국 딸의 권유로 65년 만에 다시 학교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과 영어다. 2, 3학년 때 배운 제곱근, 인수분해 문제를 풀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할아버지는 전 학기 시험에서 수학과 영어 과목 모두 만점을 받아 자식들을 놀라게 했다. 역사 과목도 내용이 어렵긴 했지만 학교에서 배우며 식견을 쌓으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또 늦은 나이지만 배우기 위해 모인 학생들끼리 서로 격려하는 분위기도 할아버지에게 활력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배운다는 것은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좋은 것”이라며 “식견을 키울 수 있는 기회도 되고 내 인생의 한을 풀 수 있는 시간이 됐다”고 밝혔다. “앞으로 계획은 올해 내 나이 여든이라 고등학교 진학은 힘들 것 같고, 이젠 내 살아온 역사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지. 방송중을 졸업한 일도 그 역사에 길이 남을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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