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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단군조선, 러시아가 부활시키다

고르바쵸프는 왜, 단군조선을 기획했는가,

러시아 역사학자들의 동향과 연구방식, 조선부활계획의 진실

가. 러시아 학계의 동향

러시아 학계의 학문 연구는 일본과 우리와는 달리 학연, 지연, 혈연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고 자유분방합니다. 학연, 지연, 혈연에 의존하는 것은 장점도 분명 있지만 단점이 너무 도드라지게 나타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잠깐 여기서 놀라운 일본인 이야기를 하나 추가하겠습니다. <조선사편수회>의 이마니시 류가 엄지와 검지 사이에 수술을 무려 6번 받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역사를 왜곡하려고 연구하고 공부하기 위해 끊임없이 펜대를 잡았고, <조선사>를 완성 할 때 까지 밥 먹을 때, 잘 때도 펜을 놓지 않았다 합니다. 그래서 엄지와 검지 사이에 계속 물집이 생겼고 결국엔 무려 3번이나 실핏줄이 터져 펜을 잡던 오른손을 6번이나 수술 했답니다. 그 6회의 수술 결과 이마니시 류의 오른손은 감각이 없어져 버렸고 결국 오른손으로 펜을 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자 왼손으로 펜을 잡고 부지런히 연습해서 결국은 왼손잡이로 <조선사>를 완성했다 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날조하기 위해 그는 그렇게 공부하고 연구했습니다. 때로는 같은 학자로서 용서가 되지 않지만 공부하고 연구하는 열정 그것 하나에는 머리가 절로 숙여지게 됩니다. 우리는 그보다 몇 배 이상 공부해야 합니다. 갈 길이 매우 멉니다. 현재 우리나라 강단사학자들 중에 이마니시 류처럼 공부하는 학자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 공부하고 왜곡된 주장을 한다면 그 노력은 인정하되, 연구내용은 신랄하게 비판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라고 저는 배웠습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 이제 러시아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러시아에서는 학파가 필요 없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교수임용논문을 써서 엄격한 심사를 거쳐 합격해서 교수가 되면 그때부터 마음 맞는 학자끼리 일하고 제자를 양성하게 됩니다. 러시아만큼 재야사학이 강한 나라는 없습니다. 즉 재야사학의 진정한 강자는 러시아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개인 스스로 연구소 여는 경우보다 혼자 연구하고 초야에 묻혀 제자를 가르치는 일을 많이 한다는 겁니다. 그게 자유롭기 때문이죠. 초야에 묻혀있는 재야의 강자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것은 통계로 조사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재야사학자들은 교수임용 등록은 되어 있지만 실제로 활동하는 학자들을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은 세계에서 국토가 가장 넓은 러시아에서만 가능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넓은 국토에 학자가 재야로 숨어버리면 무슨 재주로 찾을 수 있나요? 그런 학자들은 러시아어로 Коллективные отшельник 라고 합니다.1)

1) Коллективные отшельник : отшельник는 러시아어로 ‘은둔자’라는 뜻이며  Коллективные는 러시아어로 결집이라는 뜻으로 소련 때는 산업지구 및 공단을 표현할 때 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러시아를 방문할 때 역사이야기만큼은 항상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어떤 고수가 내 앞에 마주 앉아서 이야기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러면서도 고수가 앞에 있다면 필자는 한 수 청합니다. 러시아 학자들만큼 사고방식이 자유로운 학자들이 없으니까요. 러시아도 강단사학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로 대도시의 대학 교수들과 연구소 직원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들은 공식적으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들은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강단사학과 재야사학이 사이가 좋지 않는 나라도 드뭅니다.

▲중국 서쪽 끝 신강성 우루무치 '아사타나'에서 발견된 무덤 벽화-만주 고구려 벽화 무덤과 너무 닮아 있다. 중국에서는 '동진'시대 것이라고 하지만, 신단수, 한웅족을 상징하는 신단수에 앉아 있는 새, 해와 달, 북두칠성,하녀가 부엌에서 조리하는 모습,무덤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복색 등에서 고구려의 숨결을 느낄 수 가 있다. 고구려의 국시가 단군조선의 강역을 회복하자는 뜻의 '다물'이다. 그리고 중국 끝, 서역에 단군조선의 대표적인 수도였던 '아사달'과 소리가 거의 같은 '이사타나'가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러시아는 이들과의 관계는 서로 협력관계이고 아주 사이가 좋습니다. 실제로 러시아 논문들은 재야사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인용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이들의 협력은 러시아 학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예를 들어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우주를 개발할 때 재야과학자들의 공로가 가장 컸다 합니다. 이들은 공산주의가 싫어서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우주과학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 적극 협력했다고 합니다. 대단한 일이지요. 우리에게는 그런 문화가 정말 요원할 뿐입니다.

나. 러시아학자들의 연구방식

러시아 학자들의 연구방식은 다양하고 방대한 자료를 적극 활용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론이 아주 뛰어납니다. 전 세계 이론가들을 10명 모으면 7, 8명은 러시아사람일 정도 입니다. 학문의 이론 분야는 러시아가 세계 최강이라고 미국 하버드대학도 인정했습니다. 특히 러시아의 모스크바 국립대학과 상트 페테르스부르크 과학연구소, 고리키 대성당, 야프코니스크 역사연구소, 에르미타주 박물관 등은 전 세계에 없는 자료가 없을 정도로 방대한 양을 자랑합니다. 역사자료를 찾을 수 있는 곳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 상트 페테르스부르크 과학 연구소, 고리키 대성당, 야프코니스크 역사연구소, 에르미타주 박물관, 상트 페테스스부르크 국립대학교, 표트르 국제인문과학 연구소, 모스크바 국제 세종 연구소, 그 외 1,500여개 대학 및 도서관

- 역사학 관련 단행본 : 702,400 권

- 역사학 관련 고서본(원본) : 450,440 권

- 역사학 관련 논문 : 1,440,000권

- 역사관련 각종 보고서 : 1,000,000 여권추정

대표적인 대학과 아카데미(연구소)와 그 외 1,500여개 대학과 도서관 등지에 있는 것들입니다. 엄청난 양입니다. 저 안에 우리역사서들도 많습니다. 이 자료들, 특히 고서 본 40만 여 권이궁금하지 않습니까?

러시아의 고서는 개인적으로 사서 기증하는 경우도 있고, 국가적으로 사들이는 경우, 그리고 과거 소비에트 때나 러시아 왕정시절에 약탈하거나 수거한 책들이 있습니다. 특히 소비에트 시절에 스탈린과 흐루시초프가 소비에트 전역에서 고서들을 모으는, 마치 조선시대처럼 수서령을 전국 각지에 15차례나 실시했습니다. 그러니 이 많은 고서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북아시아나 극동지방 역사고서는 거의 러시아에 원본이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청나라 말기 러시아 로마노프 왕정시절에 당시 차르였던 니콜라이 2세가 만주를 러시아 세력 하에 두면서 "만주철도 부설권"을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철도를 개설, 시베리아철도와 연결하면서 만주에 있는 온갖 사서와 문화재를 실어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2)

2) РоссиВсе сырьевых материалов и в Маньчжурии "," Принеси

Тогда он был загружен на поезд уходящий соединя́ть поезд ваго́н цифра23 объемом возвращения из Маньчжурии и мне потребовалось шесть месяцев, чтобы собрать их.я Романов протоколы судебных заседаний (러시아 로마노프 궁중 문서 출처)

해석 : "만주에 있는 모든 사료와 자료를 가져와라." 그러자 1대당 23량이 연결된 기차 6대에 싣고 만주에서 출발했고, 이 자료들을 수거하는데 6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이때 남아있던 고구려사와 발해사가 모두 쓸려갔습니다. 단군조선사, 몽골사, 만주족 역사들도 모두 쓸려갔습니다. 후일 일본의 침략에 의해 러시아가 가져가지 못했던 남은 역사서는 일본이 쓸어가는 수난을 당했지요. 러시아가 우리 역사의 대부분의 살을 뜯어먹었다면 일본은 뼈까지 발라 먹은 셈입니다.

러시아 학자들이 이 방대한 사서들의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고, 소련은 역사학자들을 대거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공산주의 사회주의 체제의 소비에트가 역사연구를 지원했다는 것은 사회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소비에트는 과학과 역사, 고고학, 산업학에 대해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역사학교와 과학학교를 잇따라 세워 학자들을 양성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놓았습니다. 어떤 제도인지 러시아의 고등학교 과목들 중 역사만 열거하겠습니다.

러시아 고등학교 과목

- 동양사  - азиатской истории

- 서양사 - Западные истории

- 러시아사 - России четыре

- 극동조선사  - Дальний Восток судостроителей

- 몽골사 - Монгольского четыре

- 역사학개론 - История, введение в

- 동양사상사 - Азиатский боссов истории

- 정교회종교사 -Православной религиозной истории

소련 시기 과목은 이보다 더 방대하였다 합니다. 소비에트 시절에는 모든 학생들이 역사학교에 들어가서 1년 과정 교육을 거친 뒤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됩니다. 러시아가 들어서면서 이런 부분이 많이 없어졌지만 소비에트 시절에는 역사는 의무 과목 이었습니다. 한 가지 번외로 예를 들자면, 세계에서 가장 첩보 전략과 활동이 뛰어난 나라가 소련, 러시아입니다. 냉전체제 때 미국이 항상 소련에게 정보전에서 밀렸습니다. 소련의 정보 수집력과 첩보 전략은 가히 세계 최고였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소련을 무너뜨리려고 소련 첩보원들에게 온갖 회유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 때 회유에 넘어간 정보원들은 지금 미국의 공직에서 은퇴하고 정부에서 연금도 나오고 이라크 전쟁 및 탈레반 작전 수행에도 큰 공을 세우게 됩니다. 이러한 전통은소비에트가 무너진 뒤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확하게 계승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방대한 데이터와 이론으로 무장한 러시아 학자들에게도 약점은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증명해 내는 부분에서 취약점을 드러낸다는 겁니다. 근거사료와 방대한 데이터에만 의존을 하다 보니 실제로 근거를 증명하는 부분에서는 취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기초가 탄탄한데다가 실증사관적인 측면을 키운다면 우리는 러시아 학자들을 실력으로 넘을 수 없을 가능성 농후하다고 봅니다. 최근 10년 사이 러시아가 실증사관에 눈을 뜨게 되면서 이들의 사관연구는 이미 미국 하버드를 넘어섰고 세계의 역사학 최강국으로 전진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는 러시아를 보면서 반성을 많이 해야 합니다. 세계 역사학의 중심이 러시아로 향하고 있는 이때 우리도 열심히 공부하여야 합니다.

다. 조선부활정책

조선부활정책은 지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가 진행하고 있는 사업입니다. 이것은 시베리아와 연해주를 이어 심양과 평양, 아니면 원산과 평양, 서울, 부산으로 연결되는 흔히 "시베리아 고속도로"를 건설하려는 것입니다. 러시아가 먼저 대륙과 대륙을 연결하는 세계 중심국가가 되고자 하는 야심적인 정책이며, 철도와 석유송유관을 연결하려는 산업적인 정책과 극동역사를 통합하려고 하는 역사 통합 정책입니다.

Проект судостроения воскресение (조선부활정책)는 최초로 언론에 공개하는 바입니다. 왜 조선이 들어갔을까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러시아 역사학자들의 대부분은 오늘날의 러시아인의 조상을 Dangun(Дэн Gary)으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소비에트 역사가들이 이미 밝혀냈고 소비에트에서는 이것을 기밀로 숨겼습니다. 왜냐하면 소비에트 지배에 있던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와 퉁구스와 투르크계통의 민족들이 연방에서 연쇄 이탈 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학자들의 단군 연구는 1970년~1990년에 절정에 달했고 이들은 비밀리에 단군학술회의도 개최하는 등 단군연구에 거의 사활을 걸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 소비에트에서는 이것을 비밀로 했고 그들끼리의 서로 연구하는 암호는 "судостроения" 이었습니다. 이것은 배를 만든다는 造船으로도 읽힐 수 있는데 일부러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써 당시 소비에트 체제라서 미국, 영국 등이 알지 못하게 하려고 은어로 표기한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퉁구스나 투르크계에 엄청난 혼란을 주었는데 왜 러시아가 조선을 암호로 정했는지 해석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러시아인의 조상인 슬라브인은 훈족의 후예들로써 단군을 시조신으로 모시고 있는 종족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이반대제 때 까지는 이것이 인정되었지만 결정적인 변화는 표트르대제 때 시작됩니다. 표트르대제가 서방 순행을 마치고 결심한 게 서구화가 되어야 러시아가 선진국이 되고 강대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직접 겪어보면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표트르대제가 돌아오자마자 단군을 그들의 역사에서 지웠습니다.

"Борода налога в  Сан-Томи 1) и gyeora" (수염과 상투에 세금을 매겨라! )

1)Сан-Томи : 근세 킵착어로 '솟구친 머리모양'의 뜻 (당시 슬라브 러시아어는 근세 킵착어였다. )

이 정책은 오랫동안 러시아를 지배했던 킵차크나 탈 몽골 때문이라기보다는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문호개방이었다고 봅니다. 위의 내용은 러시아 역사를 누리망으로 찾아도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지요. 그 다음으로 시행한 것이 서양인과 결혼을 통한 혼혈이었습니다. 이것을 표트르대제는 모든 러시아 귀족들에게 시행했고 하지 않는 귀족에게는 과도한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이렇게 러시아는 동방세계인 단군조선과 단절하려고 했었는데 그 후로 200여년이 지난 지금 그것을 다시 복원하려 하고 있습니다.

소비에트가 자기들의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진영인 서방과 관계를 끊고 1970년부터 단군조선사 연구에 박차를 가한 것은 뿌리 되찾기를 통해 소비에트 연방의 대동단결을 꾀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며, 반란 가능성이 높은 퉁구스나 투르크계통의 단군조선 역사 단일화로 소비에트 자체를 하나의 국가로 만들려고 했었다고 소련 마지막 대통령인 고르바쵸프가 밝힌 바 있습니다.

러시아는 우리와 계통이 같은 민족이었지만 그들은 표트르 때 국익을 위하여 우리와 단절했고, 40년 전부터 우리와 다시 연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회에 러시아를 우리 편으로 두어 러시아의 옹호 하에 중국과 일본을 견제하고 우리의 힘을 키우는 것, 이것이 정말 좋은 방편이라고 봅니다. 100년 전 명성황후도 이러한 부분 때문에 러시아를 끌어들이고 일본을 견제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조선부활정책 중에서 송유관을 부산까지 연결하는 사업에서는 우리기업이 시베리아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여 그곳의 광물과 석유를 우리가 받고, 러시아 경제도 동반성장할 할 수 있는 소위 "유라시아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유라시안연결망", 그것은 현대판 단군조선의 복원일 수 있습니다. 유라시안연방을 만들어 단군조선의 정신을 되살리는 것이 필자의 숙원입니다.

*글 : 세르게이정(북방고고인류학연구소 교수)

세르게이정 koreahiti@hanmail.net   

코리아히스토리타임스 출처


* 사단법인 현정회 이사장대행 이 건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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