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한상희기자〕지난 2월 25일, 강원도 평창군에 위치한 보광 휘닉스파크. 스키 시즌이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전부터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특이한 것은 이들이 스키를 타러 온 게 아니라 스키를 보러 왔다는 점이다. 바로 2018평창동계올림픽 대회 및 장애인동계올림픽대회 테스트 이벤트로 치러진 2016 FIS 스노보드 월드컵 때문이었다. 이 날은 스노보드 크로스 남녀 예선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스노보드 크로스는 4~6명이 1조를 이뤄 스노보드를 타고 장애물이 설치된 코스를 주파하여 순위를 가리는 스노보드 경기의 한 종목이다. 일반적으로 봐왔던 스키 경기가 혼자 경기하는 것이었다면 스노보드 크로스 경기는 여러명이 순위를 가리는 경기라 ‘눈위의 쇼트트랙’이라 불린다. 스노보드 크로스 코스는 일반적으로 상당히 좁으며, 선수들이 최대 스피드를 유지하면서도 이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롤러, 급경사, 둔덕, 점프 및 평지 구간을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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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 휘닉스파크 스노보드 크로스 경기장. |
경기장에 도착하기 전만 해도 필자는 본선도 아닌 예선 경기인데다가 평일 오전이고, 날씨도 갑자기 추워졌기 때문에 관객이 별로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휘닉스파크에 도착하자마자 그런 걱정은 기우였음을 깨닫게 됐다. 경기장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예선이 시작되기 30분 전부터 관중석으로 향하고 있는 관객들이 만들어낸 긴 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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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은 예선이 시작되기 30분 전부터 줄을 지어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
관객들의 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나 예선경기가 시작된 10시 20분 즈음의 관중석은 발 디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강원도 산간 지방 겨울의 추운 날씨는 각 나라의 깃발과 풍선을 손에 쥐고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로 눈밭을 오르내리는 관객들에게 있어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남자예선 경기는 오전 10시 20분 즈음, 독일의 콘스탄틴 샤드 선수가 첫 스타트를 끊으면서 시작됐다. 크고 웅장하기로 소문난 휘닉스파크의 스노보드 코스를 마치 바람처럼 질주하던 콘스탄틴 샤드 선수가 관중석이 위치한 파이널코스에 그 모습을 드러내자, 관중석에서는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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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이 피니시 라인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환호성이 울렸다. |
하지만 이 날 관중들의 환호를 받은 것은 높은 점수로 예선을 통과한 선수들 뿐만이 아니었다. 96년생으로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선수들 중 한명이었던 반 고르 카렐 선수가 안타깝게 피니시 라인 부근에서 넘어지자, 평소보다 더 큰 환호성과 박수 갈채가 이어졌다. 관중들은 “어리니까 다음에 잘 하면 되지.”, “결승점을 바로 앞두고… 아까워서 어떡하나.”라며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가장 마지막으로 피니시 라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국의 우진용 선수였다. 한국 선수로서는 유일하게 스노보드 크로스 경기에 출전한 우진용 선수의 모습이 보이자 관중석의 열띤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우진용 선수는 1분19초22를 기록함으로써 이날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 중에서 가장 낮은 순위에 머물러 본선 진출에 실패했지만, 관객들은 순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진심으로 우진용 선수를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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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의 유일한 한국 선수였던 우진용 선수는 아쉽게도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
관중석은 피니시 라인 부근에 위치하고 있어, 관객들이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선수들이 1150m 가량의 코스 중 막바지에 해당하는 3개의 둔덕을 넘는 모습 정도였다. 하지만 관중석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가 실시간으로 선수들이 다양한 코스를 질주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아쉬움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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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은 관중석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을 통해 관중석에서 보이지 않는 코스를 볼 수 있었다. |
가장 최근에 동계올림픽 종목으로 선정된 스노보드는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가진 스포츠이지만, 이날 관중석에는 젊은 사람들보다 스노보드를 타 본 적이 없을 법한 50대 이상의 중년, 노년층의 관객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세계 각국의 국기와 ‘평창 2018’이 적힌 파란 풍선을 흔들며 열정적으로 선수들을 응원하는 이들은 젊은이들보다 더 생기발랄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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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주민들의 사물놀이 응원은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
평창군에 거주하는 정문옥(69) 씨는 “젊은 사람들은 일하러 갔으니 우리가 응원을 해야지. 우리가 젊은 사람들보다 응원 잘해.”라며 열정을 과시했다. 역시 평창군에 거주하는 60대의 한 관객은 “이럴 때는 평창에 사는 게 자랑스럽지. 전국에 이렇게 넓고 좋은 스키장이 어딨어.”라며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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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석에는 젊은 사람들보다 50대 이상의 장년, 노년층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
이 날 2시간 가량 진행된 남자 예선 경기에 참가한 총 52명의 선수 중 48명이 본선에 진출했다. 이날 예선에선 캐나다 크리스토퍼 로반스키가 1분12초37로 1위를 차지했다. 2위와는 겨우 0.02초 차. 하지만 관중들은 누가 가장 빠르게 라인을 통과했는지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얀 설원 위를 자유롭게 누비며 잘하든 못하든 끝까지 최선을 다한 한 명 한 명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의 시사회격이라고 볼 수 있는 테스트 이벤트는 이렇듯 많은 관객들의 진심어린 응원과 관심 속에서 순조롭게 진행되며, 2년 후에 개최될 올림픽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2018년에도 관중석을 뜨거운 열기로 가득 채울 관객들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