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방송/최동민기자]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한국과 마주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공식 입장을 다시금 명백히 밝힌다”고 28일 밝혔다. 지난 6월4일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54일 만에 나온 북쪽의 첫 공개·공식 반응이다. 일단은 부정적이다.
김여정 부부장은 조선중앙통신으로 발표한 ‘담화’에서 “리재명 정부가 아무리 동족 흉내를 피우며 온갖 정의로운 일을 다하는 것처럼 수선을 떨어도 한국에 대한 우리 국가의 대적 인식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으며 조한관계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역사의 시계초점은 되돌릴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 부부장은 “조한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이미 완전히 되돌릴 수 없게 벗어났다”고 덧붙였다. 김 부부장의 담화는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만 실리고, 일반 인민이 접할 수 있는 노동신문에는 실리지 않았다.
이는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의 “북남관계는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2024년 12월 노동당 중앙위 8기9차 전원회의)라는 인식의 재확인이다. 아울러 북쪽은 김정은 총비서의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버려야 한다”라는 지침(2024년 1월15일 최고인민회의 14기10차 회의) 이후 민족 관계를 염두에 둔 기존의 ‘북남관계’라는 표현 대신 두 국가 관계를 뜻하는 “조한관계”(조선-한국 관계)라는 개념을 쓰기 시작했는데, 김 부부장의 담화도 ‘조한관계’를 쓰고 있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남북관계가 ‘적대적 두 국가관계’라는 원론의 재확인을 넘어 이재명 정부가 ‘흡수통일’과 ‘대결 기도’를 버리지 않고 있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25일 취임사에서 “통일부 정상화”를 강조한 사실을 겨냥해선 “확실히 흡수통일이라는 망령에 정신적으로 포로된 한국 정객의 본색은 절대로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고 폄훼했다. 정 장관의 “통일부 정상화”는 윤석열 정부 시기 통일부의 교류협력과 회담 담당 조직의 사실상 해체와 81명 인력 감축을 지적하며 이의 원상 복구 의지를 강조한 것인데, 김 부부장은 ‘통일’이라는 단어를 겨냥해 문제삼은 것이다. 김 부부장은 통일부를 “조선반도에 국가 대 국가 간 관계가 영구고착된 현실과 더불어 해체돼야 할 통일부”라고 주장했다.
김 부부장은 이재명 정부의 이러한 조처들을 “진작에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을 가역적으로 되돌려 세운데 불과한 것”이라며 “평가받을만한 일이 못된다”고 낮춰 평가했다. 나쁘지는 않은데 ‘후한 점수’를 줄 일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김 부부장은 이어 “지난 시기 일방적으로 우리 국가를 주적으로 선포하고 극단의 대결 분위기를 고취해오던 한국이 이제 와서 자초한 모든 결과를 감상적인 말 몇마디로 뒤집을 수 있다고 기대하였다면 그 이상 엄청난 오산을 없을 것”이라 주장했다. 신뢰 회복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는 문장이다.
김 부부장은 남쪽 일부 언론에서 오는 10월말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정부가 김정은 총비서를 옵서버 자격으로 초청할 수도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과 관련해 “헛된 망상”이라 일단 선을 그었다.
김 부부장이 이재명 정부의 일련의 대북 조처를 두고 “가역적”이자 “감상적인 말 몇마디”라고 낮춰 평가한 대목은, 역설적으로 “불가역적인 중요 행위”에는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여지를 둔 것으로 풀이해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