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8월 15일.
대한민국 국민에게 잊을 수 없는 비극의 날이다.
광복절 경축식이 열리던 국립극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향한 총격 사건이 발생했고, 그 과정에서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총상을 입고 끝내 서거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발생한 이 비극은 단순한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었다. 대통령을 겨냥한 총격과 영부인의 희생은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겼으며, 당시 국가 안보와 한일관계, 남북관계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남긴 사건이었다.
그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이 선보이면서 다시 한번 역사적 사실과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일고 있다.
나는 영화라는 예술의 영역을 존중한다.
창작자에게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새로운 시각과 질문을 던질 자유가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구분해야 할 선이 있다.
영화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은 같은 것이 아니다.
당시 사건은 특별수사본부의 수사를 거쳤고, 문세광은 재판을 받았다.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으며 항소심에서도 형이 유지됐고, 1974년 12월 대법원의 상고 기각으로 사형이 확정됐다.
그런데 실제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당시 공식적인 수사와 재판의 결론을 넘어 박정희 정권 또는 국가기관의 개입 가능성을 주요한 서사로 제시한다면, 관객에게 그것이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묻고 싶다.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허구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역사적 사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를 막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의문이 있다면 얼마든지 제기할 수 있다.
당시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증거와 기록에 어떤 논쟁점이 남아 있는지, 새로운 자료가 발견됐는지에 대해서는 역사학자와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다.
그러나 확인되지 않은 가설을 영화적 장치를 통해 실제 사건의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특히 육영수 여사는 이미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그 사건으로 가족과 유족들이 겪은 상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역사는 현재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다시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는 기록과 증거를 통해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 할 공동의 기억이다.
창작의 자유와 관객의 알 권리
나는 특정 영화의 상영을 막자는 주장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자는 주장도 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영화는 자유롭게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관객 역시 “이것은 역사적 사실인가, 영화적 상상인가”를 알 권리가 있다.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면 창작적 해석과 확인된 역사적 사실을 보다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창작자의 자유와 관객의 알 권리를 함께 존중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역사에 질문을 던지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영화가 제기한 가설이 곧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의혹은 의혹으로, 가설은 가설로, 사실은 사실로 구분되어야 한다.
육영수 여사를 기억하는 이유
육영수 여사를 단지 한 정치인의 배우자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그녀 역시 대한민국 현대사를 함께 살아간 한 시대의 인물이었다.
1974년 8월 15일의 비극적인 죽음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깊은 충격을 남겼고, 지금까지도 많은 국민들이 그날의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건을 영화로 다시 다루는 데에는 더욱 큰 역사적 책임이 필요하다.
역사는 누구의 편도 아니어야 한다.
진보의 역사도 아니고 보수의 역사도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역사다.
따라서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에게 불리한 역사적 해석이라 하더라도 사실이라면 받아들여야 하고, 반대로 자신이 반대하는 인물에게 유리한 허구 역시 사실처럼 포장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이 지켜질 때 비로소 역사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만들어진다.
상상력은 자유지만, 사실은 사실이어야 한다
나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졌으면 한다.
영화가 역사를 해석할 수는 있지만, 영화가 역사를 새롭게 확정해서는 안 된다.
의혹은 의혹으로,
가설은 가설로,
확인된 사실은 사실로,
그리고 창작된 이야기는 창작으로 구분해야 한다.
그 경계가 무너지면 영화는 단순한 예술작품을 넘어 역사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매체가 된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영화와 영상은 역사책 못지않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그래서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창작자에게는 더욱 세심한 사실관계 확인과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
나는 "새정수회 총재"로서 특정한 정치적 진영의 입장을 떠나,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이 더 이상 정쟁의 도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육영수 여사의 비극적인 죽음 역시 정치적 논쟁을 넘어 역사적 기록과 사실에 기초해 차분하게 기억되기를 바란다.
영화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시 쓸 수 없다.
상상력은 자유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에는 책임이 따른다.
2026년 9월29일
새정수회 총재 오정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