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학교 3학년인 김현수씨(77)의 손녀딸 규연양은 25일 이북의 큰할아버지에게 생전 첫 인사를 손편지로 전했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사랑과 애교를 듬뿍 담았다. 규연양은 “할아버지의 사진을 봤는데 저희 할아버지와 너무 닮으셔서 신기했다”라며 “제가 편지를 쓰고 이걸 전해 받으신다는 생각을 하니 꿈만 같고 감격스럽다”고 했다.
규연양의 큰할아버지 김용수씨(84)와 현수씨 형제는 38선 북쪽의 강원도 양양에 살았다. 6·25 전쟁이 나면서 큰형 용수씨와 둘째형 종수씨가 북측으로 피난을 하러 갔는데 그 길로 60여년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수십 년만의 가족 상봉은 용수씨가 북측에서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2차 상봉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이뤄졌다. 동생 현수씨와 제수씨, 조카 3명이 금강산으로 향해 이틀째 북측 용수씨와 용수씨의 딸 화숙씨(54)를 만나고 있다.
미처 함께하지 못한 규영양은 편지에 “저도 직접 뵙고 인사드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정말 아쉽다”며 “어서 남북이 통일돼 할아버지 얼굴을 뵐 수 있는 날이 오도록 기도하고 응원하겠다”고 적었다.
규연양은 “제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남북통일에 힘쓸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며 “그때까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내셔야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규연양의 편지는 이날 개별상봉 시간에 용수씨에게 전해졌다. 현수씨는 규연양의 편지와 함께 가족사진, 부모님 산소 사진이 담긴 노란 앨범도 함께 전달했다.

현수씨는 “이번에 사진과 함께 연락을 받았는데 내가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계속 훌쩍훌쩍 울었다”며 “사진을 보니까 형님 얼굴을 단번에 알겠더라”고 말했다.
용수·현수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1986년, 1993년에 돌아가셨다. 모친은 “내 새끼들 언제 보냐”고 내내 그리워했고 부친은 돌아가시면서도 “내가 이것들을 못보고 죽는다”며 한탄했다. 현수씨는 23일 속초 한화리조트로 모이기 전 어머니·아버지 산소에 들러 제사를 지냈다. 형님 용수씨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늦게나마 전하고 싶어서다.
현수씨는 “부모님이 형님들과 계셨으면 더 오래 사셨을지도 모르는데 막내랑 있으니 고생하고 일찍 돌아가셨나 싶어서 형님을 원망하고 싶다”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말론 원망한다지만 현수씨는 반갑고, 애틋한 마음에 형님에게 줄 선물을 잔뜩 준비했다. 양말 100개, 운동화 20켤레를 비롯해 생필품과 의약품을 종류별로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