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통해 세상을 배우는 아이들 대견하죠”

  • 등록 2016.12.09 14:44:47
크게보기

[나눌수록 따뜻한 세상] 라오스서 야구단 창단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

(한국방송뉴스/박기순기자) 한국 프로야구는 이만수(58)라는 이름 세 글자와 함께 태동했다. 프로야구 최초의 안타, 타점, 홈런(이상 1982년)은 그의 손끝에서 터져 나왔다. 영광은 최초 100홈런(1986년), 최초 200홈런(1991년), 최초 트리플크라운(1984년) 달성으로 계속됐다. 그가 16년간 선수로 몸담은 삼성 라이온즈는 그의 등번호 22번을 한 사람을 위해 영원히 남겨놓기로 했다.

살아 있는 전설. 전설은 그간 쌓아온 영광을 누리는 삶 대신 불모지에서 새로운 역사 쓰기를 택했다. 동남아시아의 최빈국 중 하나인 라오스에 야구의 씨를 뿌리는 것.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은 지난해 1월 미니 야구팀 ‘라오 브라더스’를 창단했다. 15~25세 선수 45명으로 구성된 라오스 최초의 야구팀이다.

“2013년 라오스에 사는 지인에게서 라오스 아이들을 위해 재능기부를 좀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당시 1000만 원 정도의 야구 장비를 후원해주고 한동안 잊고 있었어요. 퇴임 후에는 몇십 년간 함께 고생해준 아내와 유럽 여행을 갈 생각이었죠. 그런데 아내가 여행은 언제든 갈 수 있으니 당장 라오스로 떠나라는 거예요. 봉사는 기회가 있을 때 하지 않으면 마음먹기 쉽지 않다면서요. 2014년 10월 퇴임하고 한 달 뒤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이만수 SK 와이번스 전 감독은 라오스에 청소년을 위한 야구장을 짓는 사업을 홍보하느라 현역 시절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만수 SK 와이번스 전 감독은 라오스에 청소년을 위한 야구장을 짓는 사업을 홍보하느라 현역 시절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 선수들 유니폼 입히고 축구장 빌려 연습
‘헐크’ 법인 설립하고 직접 전국 뛰며 모금

그곳은 있는 것 빼고는 다 없는 곳이었다. 야구장은커녕 야구 자체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이 감독은 시즌이 끝난 SK 와이번스 선수들의 유니폼을 모조리 빌려왔다. 야구장 대신 축구장을 빌려 물주전자로 선을 그어 연습했다. 현지 정부는 망원경을 들고 따라다니며 낯선 외국인의 수상한 행보를 감시했다. 혼자 힘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선수 시절 인연을 맺은 기업 등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야구계를 떠난 사회에서 처음 배운 것은 ‘거절’이었다.

“이만수가 이런 일 한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다 도와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건 선수 때나 가능한 얘기였죠. 언론 플레이로 생각하거나 일회성 이벤트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충격이었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뭘 하고 있나 회의가 들기도 했죠. 하지만 금세 마음을 다잡았어요. 이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에게도 꿈과 희망이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고, 40년간 팬들에게서 받은 사랑을 되돌려줘야 한다고요.”

그는 파이팅 넘치던 현역 시절의 별명 ‘헐크’처럼 다시 힘을 냈다. 자신이 하는 일이 라오스를 일으키는 동시에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라는 생각에 ‘민간 외교관’이 되기로 작정했다. 이 감독은 직접 우리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라오스에 야구장을 만들면 우리나라 선수들의 겨울 전지훈련을 물가가 비싼 일본이나 대만 대신 라오스에서 할 수도 있고, 대한민국의 이름을 걸고 사업을 하면 국내 기업이 진출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정부는 라오스 정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야구장 건립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당장 1600만 원 어치의 야구용품을 지원하고 권영진 전 대구고 감독을 현지에 상주 코치로 파견했다. 라오스 정부는 30년간 야구장 부지를 무상으로 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지난 10월엔 이 감독에게 총리상을 수여했다. 묵묵한 그의 노력에 화답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8월 28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을 찾은 이 감독과 라오스 최초의 야구팀 ‘라오 브라더스’의 주장 뻐 군, 투유 군(왼쪽부터)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동아DB)
지난 8월 28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을 찾은 이 감독과 라오스 최초의 야구팀 ‘라오 브라더스’의 주장 뻐 군, 투유 군(왼쪽부터)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동아DB)

하루 세 끼 걱정하던 선수들 정치가·선생님 등 꿈 키워
“위장병 달고 산 톱스타 시절보다 지금이 더 행복”

이만수 감독의 꿈은 라오스에 숙소와 훈련장, 수영장까지 갖춘 야구장 네 곳을 짓는 것. 도움을 주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꿈에 닿으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는 좀 더 체계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지난 5월 자신의 별명을 딴 헐크파운데이션을 설립했다. 법인에는 참모들이 있을 뿐 직원은 이 감독 단 한 사람. 그는 요즘 ‘1만 원 모금 운동’을 위해 현역 시절보다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직접 다녀보니 기부는 돈 많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어려움에 공감하는 보통 사람들이 하는 거더군요. 진심으로 제 이야기에 공감하고 단 만 원이라도 내줄 수 있는 ‘개미군단’을 만들어보잔 생각입니다. 일단 저부터 몇 달 전 받은 광고 수익 2억 원을 내놓았습니다. 제가 먼저 하지 않고 손 벌릴 순 없으니까요. 여기저기 손 벌리고 다니는 저를 보고 아내는 ‘앵벌이’ 같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도 쌀 떨어지면 이야기할 테니 그 전까지는 열심히 해보라며 응원해줍니다.”

앞선 주자를 진루시키기 위해 번트를 날리고 자신은 아웃되는 ‘희생 플레이’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던 라오스 선수들은 올 초 한국과 일본에서 6개 팀이 참가한 친선 야구대회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 올 여름엔 한국을 방문해 프로야구 시구를 하는 등 소중한 추억도 쌓았다. 그러나 라오스엔 프로야구팀이 없는 상황. 이들이 야구를 배워야 할 이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 감독은 야구를 배우는 것은 세상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라오스 현지에서 이 감독과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이 함께 훈련을 떠나는 모습. (사진=헐크파운데이션)
라오스 현지에서 이 감독과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이 함께 훈련을 떠나는 모습. (사진=헐크파운데이션)

“라오스는 전쟁이 오래 지속돼 매우 황폐해져 있어요. 처음 그곳에 갔을 때 아이들은 하루 세 끼 밥 먹는 게 꿈이라고 했어요. 그런 친구들이 야구를 배운 뒤 정치가가 되어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 선생이 되어 열악한 교육을 바꾸겠다,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을 돌보겠다고 해요. 야구선수 되겠다는 놈은 없냐고 하니 겨우 두 명이 손을 들데요. 하지만 아무러면 어때요. 야구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고 생각을 넓히면 곧 인생이 바뀌는 거예요. 제가 할 일은 야구 기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는 겁니다.”

최고의 포수, 최고의 타자로 선수 시절 늘 정상에 있었고, 세계 최고의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경험(2005년 화이트삭스 코치 재임 시절)했지만 그는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라며 특유의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선수 시절 내내 스트레스로 위장병을 달고 살았어요. 그땐 오로지 최고가 되는 것만이 목표였어요. 그런데 정상에 선 기쁨은 하루면 끝나더군요. 영원히 환영받을 줄만 알았던 인생이 끝이 나고 이젠 2막이 열렸습니다. 요즘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감사합니다’예요. 이전엔 오로지 제 삶에만 신경 쓰느라 주변을 돌볼 여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보니 주변에 감사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돌려줘야죠. 더 많은 후배들이 야구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팬들에게 보답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놓겠습니다.”

박기순 기자 pksdo@hanmail.net
Copyright @2009 한국방송뉴스 Corp. All rights reserved.


등록번호 서울 아 02188, 등록일 2009-07-17, 발행인:이헌양. 대 표:김명성 서울특별시 송파구 백제고분로 18길, Tel 02-420-3651
한국방송뉴스(주) © ikbn.news All rights reserved.
한국방송뉴스(주)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