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진승백기자]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군청이 있는 읍에서 차로 40분을 달려야 닿는 산골 마을이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18일, 굽이굽이 이어진 산길에는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한 주택의 방 안에는 1929년생 박종례 할머니가 홀로 있었다.
유창훈 횡성군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장이 가방을 내려놓고 곧바로 맥을 짚었다. 침 치료를 하며 통증 부위를 살피고, 간호사는 혈압과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집 안에서 이뤄지는 진료였지만, 과정은 병원과 다르지 않았다.
진료를 마치자 할머니는 달력을 가리키며 물었다.
"의사 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만 오시지?"
달력에는 방문 날짜가 크게 표시돼 있었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의미다.

횡성군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의료진이 박종례 할머니의 진료를 보고 있다. 2026.3.18 (사진=정책브리핑)
병원에서는 보통 5~10분이면 끝나는 진료가 이곳에서는 30분가량 이어진다. 그 시간 동안 의료진은 건강 상태뿐 아니라 생활 전반을 함께 살핀다. 현장에 동행한 사회복지사는 진료를 마친 뒤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 지역에 어르신 말벗 서비스도 연결할 수 있는지 알아볼게요."
필요한 서비스를 먼저 찾아 연결하는 것. 이달 27일 본사업 시행을 앞둔 '통합돌봄'이 지향하는 방식이다.
◆ 일상 속 '의료 공백'을 메우는 통합돌봄
횡성군은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전체의 약 40%에 달하는 초고령 지역이다. 산림이 전체 면적의 72.2%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산간 지역이기도 하다. 읍·면 간 거리가 멀어 교통 접근성이 떨어지고, 거주 지역에 따라 의료기관 이용 자체가 쉽지 않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에게 병원은 '가야 하는 곳'이 아닌 '가기 어려운 곳'이 된 지 오래다.
통합돌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의료기관이 멀다면, 의료가 '먼저' 찾아가면 된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횡성군은 '보건·의료서비스'를 통합돌봄의 중심에 두는 방향을 선택했다.
현재 한의원 3곳과 의원·병원급 의료기관 1곳이 참여해 재택의료, 방문진료, 왕진 등 다양한 의료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지난해 상반기 통합돌봄 서비스 평가에 참여한 노인·장애인 210명 가운데 183명(87.1%)이 방문진료·간호·재활 서비스를 선택했다. 10명 중 9명 가까이가 '집으로 찾아오는 의료'의 만족도가 높다고 답한 것이다.
◆ '신청'에서 '연결'로…돌봄을 설계하는 방식
통합돌봄이 기존 복지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무엇일까?
기존의 복지는 서비스를 개별 단위로 제공하는 구조였다.
식사가 어려운 주민에게는 식사 지원, 이동이 어려운 주민에게는 이동 지원. 의료와 돌봄, 생활 지원이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운영되다 보니, 정작 당사자가 필요한 서비스를 '스스로' 찾아 신청해야 하는 부담이 컸다.
통합돌봄은 이 구조를 뒤집는다.
'무엇을 줄 것인가'보다 '무엇이 필요한가'를 먼저 묻는 방식이다. 신청하는 복지가 아니라, 찾아가는 복지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살던 곳에서 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지원 받도록 함으로써, 가족 부담을 줄이고 돌봄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이 정책의 핵심 취지다.

횡성군청 대회의실에서 '횡성군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2026.3.18 (사진=횡성군청)
그 연결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곳이 있다. 바로 '통합지원회의'다.
18일 오전, 횡성군청 회의실에는 20여 명의 관계기관 전문가들이 모였다.
공무원과 의료진, 복지 담당자들이 한자리에 앉아 대상자별 지원 계획을 검토했다. 읍·면에서 사전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건강 상태, 주거 환경, 가족 상황, 생활 능력 등이 하나씩 공유됐다. '이 지원이 적절한지', '더 필요한 서비스는 없는지'를 두고 의견이 오갔다.
회의는 단순한 보고 자리가 아니다. 누군가의 삶에 어떤 돌봄이 가장 필요한지를 함께 설계하는 과정이다.
'통합돌봄' 본사업에서는 이 통합지원회의 운영이 의무화되며, 대상자의 상태 변화를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해 개인별 지원계획을 조정하는 지속관리체계도 제도화됐다.
논의를 거쳐 지원 계획이 확정되면 각 서비스 기관으로 의뢰가 이루어지고, 실제 '돌봄'이 시작된다.
◆ 치료를 넘어, 삶을 지탱하는 돌봄
우천면 달빛마을의 한 주택에서는 또 다른 장면이 이어졌다.
1944년생 조복덕 씨는 중증요양상태 2등급으로, 현재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다. 집에서 와상으로 딸의 간병을 받고 있으며, 연명치료 없이 거주지에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유창훈 센터장이 중증요양상태 2등급 환자를 살피고 있다. 2026.3.19 (사진=정책브리핑)
침대에 누운 어르신 곁으로 의료진이 다가갔다. 유창훈 센터장은 맥을 짚으며 상태를 확인했고, 간호사는 굳어진 근육을 하나하나 풀어주며 경직 상태를 살폈다.
곁을 지키던 딸 신영희(62)씨가 조용히 말했다.
"겉으로 돌보는 건 제가 할 수 있는데, 몸 안 상태를 확인하거나 의료적인 판단은 어렵거든요. 방문의료가 시작된 이후 마음이 훨씬 놓였어요. 주기적으로 와주시는 것 자체가 큰 도움이 돼요."
잠시 멈추다 그가 덧붙였다. "엄마가 더 좋아지시기를 기대하기보다도, 지금 상태를 유지하면서 집에서 지낼 수 있는 자체가 중요하니까요."
딸 영희 씨의 이야기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시범사업에 참여했던 보호자의 69.8%가 통합돌봄 이후 부양부담이 줄었다고 답했다. 돌봄을 홀로 감당해야 했던 가족들에게 제도가 손을 내민 것이다.
통합돌봄은 '버틸 수 있게 하는' 돌봄으로 그 의미를 넓혀가고 있다.
◆ 거리·인력의 한계…지역 맞춤형 설계가 필요하다
다만 시범운영의 경험은 앞으로의 현실적 과제도 함께 드러냈다.
농어촌에서는 가구 간 거리가 멀어 한 번 방문에 왕복 2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의료진이 하루에 방문할 수 있는 가구 수는 많아야 서너 곳에 그친다. 진료량이 제한되다 보니 교통비와 운영비 부담이 커지고, 지속 가능한 운영 구조를 만들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료 인력 확보도 쉽지 않다. 도시 지역과 달리 군 단위에서는 의원급 의료기관에 간호 인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간호사가 직접 가정을 방문하고, 의사는 화상으로 진료하는 비대면 진료 도입 등 새로운 방식을 시도할 예정이다.
지역별 여건이 다른 만큼, 본사업에서는 지자체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운영이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권혁남 횡성군 통합돌봄팀장은 "지역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방식보다는 지역에 맞는 운영이 중요하다"며 "현장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제도가 보완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병원이 아닌 집으로…돌봄 방식의 전환이 시작됐다
3월 27일 본격 시행을 앞둔 통합돌봄은 우리 사회 돌봄 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통합돌봄은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책임지는 새로운 돌봄체계"라고 강조한 바 있다.
병원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돌봄이 집으로 찾아오는 구조, 요청한 서비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지원이 먼저 연결되는 방식.
달력에 방문 날짜를 크게 써두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산골 할머니, 방문의료가 시작된 뒤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는 딸의 목소리가 통합돌봄 정책의 필요성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