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성적 지상주의 탈피, 기본 가치관·인식부터 바꿔야”

  • 등록 2020.08.13 12: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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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숙진 스포츠윤리센터 초대 이사장
“성적만을 위해 타인에게 아픔·고통 주는 행위 더 이상 없어야”
정책브리핑 최선영

최근 고 최숙현 선수 사건으로 체육계의 고질적인 폭행·성폭행 악습이 다시 한번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이는 구시대의 유산이며 후진적인 행태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지난 5일 체육인의 인권보호와 체육계 비리 근절을 위해 전담기구인 스포츠윤리센터가 마침내 출범했다. 하루 전날인 4일에는 체육인 인권보호를 위한 일명 ‘고 최숙현법’으로 불리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스포츠윤리센터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해 만든 독립 법인이다. 문체부는 물론 대한체육회, 대한장애인체육회 등 기존 기구들이 수행하던 인권 관련 신고·상담 업무를 모두 센터로 이관해 일원화했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사안의 시급성을 인지하고 출범 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빌딩 9층에 위치한 스포츠윤리센터 사무실에서 이숙진 초대 이사장을 만나 앞으로의 활동 계획과 일부에서 우려하는 사항에 대해 들어봤다.

이숙진 스포츠윤리센터 이사장.

그동안 체육계와는 인연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마음으로 위원장직을 수락하셨나요?


사실 처음에 제안을 받고 ‘왜 하필 접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성차별, 성 평등, 성폭력, 성희롱 등 관련 영역의 강의를 시작한 지 어느덧 30년이 됐더라고요. 그 기간 동안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차별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논의도 해왔습니다.


하지만 많은 세월이 지났어도 쉽게 변하지 않는 문제들이 있더라고요. 이러한 문제는 어떻게 보면 제 인생의 화두이자, 어떻게라도 변화시켜야 하는 영역이 됐습니다. 또한 제가 여성가족부 차관으로 재임하던 2019년 1월 범정부 차원에서 ‘체육분야 성폭력 등 인권침해 근절 대책 향후 추진 방향’을 발표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런 경험들이 축적돼 체육계와는 직접적인 인연은 없었지만,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굉장히 피하고 싶었습니다. 피하고 싶었던 이유는 윤리센터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맡아야만 했던 이유는 현재 체육계에서 일어난 심각한 문제를 누군가는 맡아서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어렵고 힘든 일인 것을 알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5일 업무 개시에 들어간 서울 서대문구 스포츠윤리센터를 방문해 이숙진 이사장을 비롯한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문화체육관광부)

故 최숙현 선수 사건 등을 계기로 체육계 폭력 근절 및 선수 인권보호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센터의 역할이 막중한데요.


업무를 게시할 때도 말씀드렸지만, 고 최숙현 선수를 생각하면 정말 안타깝고 가족들께도 다시 한번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스포츠는 일상에서 기쁨과 활력, 보람을 주는 것으로 기대하는데, 왜 이런 일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지 참 안타깝습니다. 지난 4일 ‘고 최숙현법’이라 불리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돼 윤리센터가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센터에서는 스포츠인의 인권에 대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센터라는 명칭도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센터의 핵심적인 역할은 스포츠인들의 인권을 지키는 것입니다. 먼저 피해자가 언제든지 편안하고 안전하게 보호를 받으면서 상담하고 신고할 수 있게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 역할입니다. 이러한 사건들이 반복적으로 이뤄지지 않기 위해서는 폭력·성폭력 관련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신고·상담, 조사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징계가 제대로 이뤄져야 합니다. 더불어 체육계의 공정성 부분과 관련 불공정 및 비리에 대한 조사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센터의 조직과 인력은 어떻게 구성되었으며, 구체적인 업무 추진 계획은요?


저를 포함해 26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경영·기획팀이 있고, 인권진흥실에는 인권대응팀과 교육홍보팀 등 2개의 팀, 비리조사실에는 불공정 및 비리에 대한 조사 1팀과 2팀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스포츠윤리센터 직원들이 출범 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스포츠인권진흥실 내부 모습.

급하게 해야 할 것들 중 하나는 문체부와 대한체육회, 장애인체육회에서 받았던 신고·상담 등 담당했던 업무들이 차츰 저희들에게 이관돼야 합니다. 다만, 저희 쪽의 신고·상담의 업무를 게시하기 전까지는 기존 기관에서 지속적으로 신고와 상담을 진행해야 합니다. 저희는 조사실, 상담실, 홈페이지 등 일정 사항이 완비되면 기존의 업무들을 이관 받아 처리하고, 나아가 새로운 신고·상담을 받을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게 언제쯤인 궁금해합니다. 통상적으로 6개월 정도 걸려 최소 2~3개월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예상하시는데요. 저희 쪽에서 최대한 당겨 9월 중에는 상담과 신고 업무는 시작할 수 있게 노력할 것입니다.


 예산 및 인력 부족 문제, 특사경 제도 미도입, 권역별 지역센터 설치 문제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예산, 인력 부분에 대한 문제는 지속적으로 확대를 위한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규모로 출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만큼 시급하기 때문입니다. 문체부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지만, 예산 문제는 최종적으로 기획재정부에서 심사합니다. 기재부에서도 충분히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을 것이기에 예산과 인력을 확보할 수 있게 도와주길 바랍니다.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 제도는 조사권의 문제입니다. 현행 법개정 사안으로는 저희가 조사를 통해 일부 범죄 혐의가 있을 경우 경찰에 고발하게 돼 있고, 조사를 통해 징계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문체부 장관에게 징계를 요구하면, 관련 체육회에서는 그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돼 있습니다. 물론,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의 벌칙 조항은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따라서 센터는 피해자의 구제와 가해자의 징계 및 처벌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징계 이력시스템’을 통해 징계의 이력이 있는 경우뿐만 아니라, 심의 대상의 경우까지 포함해 향후 지도자의 역할을 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시스템화할 것입니다. 또한 이번에 통과된 개정법에 따르면, 징계를 받은 지도자의 자격정지 기간이 1년에서 5년으로 연장됐습니다.


특사경 도입은 직접 수사와 관련된 부분인데, 관련 법률 개정안은 발의된 상황이어서 개정이 되길 기대합니다. 도입되기 전까지는 자체적으로 직접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어 최대한 피해 현장에 밀착해 조사할 것이고, 경찰 파견도 추진 중입니다.

이숙진 이사장이 일부에서 우려하는 예산 및 인력 부족, 특사경 제도 미도입, 권역별 지역센터 설치 문제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권역별 문제와 관련해서는 공간적, 지리적 접근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내년도에 적어도 3개 권역에 지역본부(가칭)와 같은 조직을 설치하기 위해 예산과 인력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리적, 공간적 한계가 있을 수 있는 부분은 SNS, 홈페이지, 전화 등 온라인 장치로 언제 어디서나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나아가 찾아가는 조사·상담을 통해 공간적·지리적 접근성의 한계를 극복할 것입니다.


 센터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사회 각계의 협조 또한 필요한데요. 이와 관련해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취임하면서 많은 분들이 ‘체육계의 인권문제와 폭력을 완전히 사라지게 해달라’고 문자를 주셨는데, ‘완전히’라는 말에 짓눌려 한동안 잠을 못 이뤘습니다. 많은 부분을 해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신고하기 정말 어려운 피해자가 주변에 있다면, 저희 센터로 찾아올 수 있도록 안내해 주길 부탁드립니다. 스포츠윤리센터가 잘 알려져야 피해자들이 혼자 끙끙 앓지 않고 신고하거나 상담할 수 있습니다.


스포츠윤리센터만으로는 체육계의 인권침해나 비리 문제를 다 해결하리란 어렵습니다. 스포츠를 경쟁과 성적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연대와 협력, 상호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도록 함께 희망해야 합니다.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선수와 지도자뿐만 아니라 부모님들께서도 선수들에게 격려해 주길 바랍니다. 1, 2, 3등만 살아남는 스포츠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즐기고 격려할 수 있는 스포츠가 돼야 합니다.


인식의 변화만으로는 되지 않는 구조와 제도의 문제도 있습니다. 구조와 제도의 문제는 엘리트체육과 학교체육, 생활체육 간에 칸막이를 치면서 발생하는 성적 지상주의의 문제들을 정책적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힘써줘야 합니다. 예방과 관련된 많은 문제들은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과 인식에 달려 있습니다. 삶에 대한 철학이 될 수 있죠. 이번 기회에 타인에게 아픔이나 고통을 주고 자신이 얻는 성적이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김명성 기자 kms40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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